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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신학: 쟁점으로 읽는다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왜 언약 신학인가?” 서양사를 대학에서 전공하던 필자를 사로잡았던 질문이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이 서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듯이 17세기 청교도의 언약 사상은 근대사를 향한 사회 변동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일찍이 하버드 대학에서 청교도 연구의 기초를 놓은 페리 밀러(Perry Miller, 1905–1963)가 초기에는 필자에게 권위 있는 안내자였다. 이러한 밀러가 교회사 전공 신학도가 된 필자에게는 오히려 극복해야할 과제로 바뀌었다. 특히 청교도 계약(언약) 사상에 대한 그의 테제는 적지 않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약이라는 주제로 구약과 신약을 꿰뚫고 일관성 있고 명쾌한 논리로 성경 전체를 풀어낸 수많은 저작들 속에 푹 빠져들게 된 필자는 거기서 언약신학의...

제7장 사람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2. 사람과 더불어 맺은 첫 번째 언약은 행위 언약이다. 이 언약 안에서 완전하고(전)인격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2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의 언약을 크게 두 개의 언약, 곧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이 시기에는 타락 전 언약을 “행위 언약” 으로 표현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달리 동일한 언약을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자카리우스 우르시누스(Zacharius Ursinus)는 이 언약을 “자연 언약”으로 불렀고 캐스퍼 올리비아누스(Casper Olivianus)는 “창조 언약”이라고 명명했다. 존 다우네임(John Downame)은 “생명 언약”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 밖에도 “율법언약”과 “교제 언약” 그리고 최근에는 “시작 언약” 등의 다양한 명칭들이 등장했다.23 타락 전 언약에 대한 신학자들의 관심은 17세기 중엽까지 지속적으로 증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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